취가정
기본정보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환벽당을 지나 오솔길로 들어서면 비스듬하게 기운 돌층계가 보인다. 그 돌층계를 따라 오르면 단아한 정자가 나타난다. 취가정 이다. 취가정은 이 마을 출신인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다. 취가정 앞뜰에는 ‘취시가’ 라는 시비가 외롭게 서 있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듣는 사람 없네
나는 화월에 취함도 바라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움도 바라지 않고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 구름이요
화월에 취하는 것도 뜬 구름이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내 마음도 장검으로
명군께 보답만 하고 지고
김덕령 장군이 석주 권필의 꿈에 나타나 술에 취한 모습으로 읊었다 하여 ‘취가시’라고 부른다. 부귀영화도 공훈도 바라지 않고 오직 임금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는 김덕령 장군. 그러나 29살, 젊은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뜬 김덕령 장군은 권필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한 한 맺힌 노래를 부른다. 권필은 이에 화답하는 시를 한 수 지어 그의 원혼을 위로하니 뜻 있는 선비들의 슬픈 마음을 자아내는 감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장군께서 예전에 칼을 잡으셨으나
장한 뜻이 중도에 꺾이니
이 또한 운명이로고
지하에 계신 영령의 한없는 원한이여
분명 이 노래는 취시가로구나
김덕령 장군 나이 스물다섯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형님 김덕홍과 함께 담양에서 창의하여 전주까지 진주하였다. 그런데 전란 중에 늙은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김덕령 장군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 모친은 별세하고 형님은 전사하는 비운을 겪는다. 상중임에도 김덕령 장군은 병사를 모아 왜적이 호남지방으로 진출하는 길을 영남에서 막았다. 왜적들이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는 장수는 김덕령 장군이었다. 승승장구하며, 이름을 날리면 세상에는 시기하는 무리가 있는 법. 충청병사 이시언과 경상우병사 김응서는 이몽학이란 자가 난을 일으키자 김덕령 장군이 그들과 내통하여 모반을 획책했다고 모함을 한다. 장군은 이 일로 옥에 갇히고 몽둥이 맞는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무등산에는 김덕령 장군과 연관된 수많은 유적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광주사람들에게 있어 김덕령 장군은 장군이기 앞서 ‘덕령이’ 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장군은 태어날 때부터 거구에다 힘이 장사였다. 겨드랑이에 용비늘이 있었다고도 한다. 장군은 어느 날 건너편 산까지 애마와 활을 쏘아 누가 먼저 도착하는가를 겨뤘다. 장군이 도착해 보니 화살이 보이지 않자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에 화살이 돌아왔다. 장군은 애통해 하며, 경솔함을 뉘우쳤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출처 : 광주관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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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환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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