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장군 의복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송강로 13
- 062-266-6355
- 충장사
기본정보
1965년 광산김씨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광주 무등산 이치(梨峙)에서 김덕령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400년 전의 의복들이다.
김덕령(1567∼1596)은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이름을 떨친 의병장으로 비록 체구는 작지만 민첩하고 능력이 탁월해 왜병장들은 그의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 철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 28년(1595) 적장과 내통한다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어 이듬해 옥사하였다. 영조 때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 병조판서로 추증 되었고 광주 의열사에 그의 위패를 모셨다.
출토된 그의 의복에는 조선시대 문무관이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왕을 호위할 때, 또는 국난 시에 입었던 철릭의 여름용과 겨울용 2점,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옷깃이 직선으로 곧아 이름 붙여진 직령포가 춘추용과 겨울용 4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바지 1점 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릭은 임진왜란 당시 그가 입었던 것으로 위급 시에 양팔을 모두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옷은 흰모시로 만들었고, 겨울용은 두터운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길이도 여름용보다 더 길게 하여 방한용으로 입었다.
직령포는 흰 무명을 곱게 누빈 춘추용과 솜을 두텁게 두고 누빈 겨울용이 있다. 특히 명주직령포는 삭아서 솜만 남았으나 다른 옷들은 등솔기에서 소매 끝까지의 화장길이가 85㎝인데 비해 129㎝로 길다. 따라서 이것은 생존 시에 입었던 옷이 아니라 시신을 입히기 위해 특별히 만든 수의로 보인다.
저고리는 겉은 굵은 면이고 속은 마로 안에 솜을 둔 것이고, 바지는 현재 솜만 남았으나 바지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옷들은 16세기말의 것들로 복식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김덕령(1567∼1596)은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이름을 떨친 의병장으로 비록 체구는 작지만 민첩하고 능력이 탁월해 왜병장들은 그의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 철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 28년(1595) 적장과 내통한다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어 이듬해 옥사하였다. 영조 때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 병조판서로 추증 되었고 광주 의열사에 그의 위패를 모셨다.
출토된 그의 의복에는 조선시대 문무관이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왕을 호위할 때, 또는 국난 시에 입었던 철릭의 여름용과 겨울용 2점,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옷깃이 직선으로 곧아 이름 붙여진 직령포가 춘추용과 겨울용 4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바지 1점 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릭은 임진왜란 당시 그가 입었던 것으로 위급 시에 양팔을 모두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옷은 흰모시로 만들었고, 겨울용은 두터운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길이도 여름용보다 더 길게 하여 방한용으로 입었다.
직령포는 흰 무명을 곱게 누빈 춘추용과 솜을 두텁게 두고 누빈 겨울용이 있다. 특히 명주직령포는 삭아서 솜만 남았으나 다른 옷들은 등솔기에서 소매 끝까지의 화장길이가 85㎝인데 비해 129㎝로 길다. 따라서 이것은 생존 시에 입었던 옷이 아니라 시신을 입히기 위해 특별히 만든 수의로 보인다.
저고리는 겉은 굵은 면이고 속은 마로 안에 솜을 둔 것이고, 바지는 현재 솜만 남았으나 바지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옷들은 16세기말의 것들로 복식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 등록정보
| 문화재 지정현황 | 중요민속자료 제111호 |
|---|---|
| 문화재 제작연대 | 조선중기 |
이용정보
| 이용시간 | 09:00 ~ 하절기(18:00) 동절기(17:00) |
|---|---|
| 휴일 | 없음 |
| 주차시설 | 주차 시설있음 |
| 버스정류장 |
충장사(북) :
충효188
,
충효187
충장사(남) :
118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