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금계일기
기본정보
금계일기는 조선시대 학자인 금계(錦溪) 노인(魯認)(1566~1623)이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2년 동안 포로생활 하다가 명나라 사절단의 배로 도주하여 북경을 거쳐 귀국하게 된 경위를 쓴 일기문이다. 보물 제31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진주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금계노인은 나주에서 태어나 17세에 진사시에 오르고 20세에 관직에 나갔다가 부모봉양을 위해 귀향한다. 27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아 권율장군 휘하로 들어가 전쟁에 참여해 승리한다. 이후 정유재란 때 일본군 앞에서 부모를 지켜내 왜장을 감동시켰다. 왜장은 다른 왜병이 해치지 못하도록 ‘물해효자’라는 표식을 부여한다. 결국 일본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으나, 간신히 탈출하여 북경을 거쳐 귀국해 선조임금에게 일본의 사정과 복수책을 올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벼슬을 하사받는다.
이 일기는 선조 32년(1599)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 약 4개월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의 앞뒤가 없어지고 글씨도 많이 훼손되어 읽기가 매우 힘들어 대체적인 정황만 알 수 있는데, 그가 죽은 후 200 여 년이 지나고 그의 7대 후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노인의 시문과 함께 『금계집』속에 이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일기에는 명나라 소장학자들과 교유하면서 그들의 질문에 따라 한국의 교육, 과거, 재정, 군사, 문화, 풍속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 것이 일기에 쓰여있어 시대상황과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광주광역시>
금계노인은 나주에서 태어나 17세에 진사시에 오르고 20세에 관직에 나갔다가 부모봉양을 위해 귀향한다. 27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아 권율장군 휘하로 들어가 전쟁에 참여해 승리한다. 이후 정유재란 때 일본군 앞에서 부모를 지켜내 왜장을 감동시켰다. 왜장은 다른 왜병이 해치지 못하도록 ‘물해효자’라는 표식을 부여한다. 결국 일본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으나, 간신히 탈출하여 북경을 거쳐 귀국해 선조임금에게 일본의 사정과 복수책을 올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벼슬을 하사받는다.
이 일기는 선조 32년(1599)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 약 4개월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의 앞뒤가 없어지고 글씨도 많이 훼손되어 읽기가 매우 힘들어 대체적인 정황만 알 수 있는데, 그가 죽은 후 200 여 년이 지나고 그의 7대 후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노인의 시문과 함께 『금계집』속에 이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일기에는 명나라 소장학자들과 교유하면서 그들의 질문에 따라 한국의 교육, 과거, 재정, 군사, 문화, 풍속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 것이 일기에 쓰여있어 시대상황과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광주광역시>
문화재 등록정보
| 문화재 지정현황 | 보물 제311호 |
|---|---|
| 문화재 제작연대 | 조선 선조32 |
이용정보
| 이용시간 | 09:00 ~ 18:00 |
|---|---|
| 휴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단, 월요일이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 2조에 따른 공휴일일 때에는 공휴일 다음의 첫번째 평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