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동계 고문서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야평길 1-2
- 062-607-2332
- 남구청
기본정보
양과동의 동계(洞契) 자료는 이 지역 마을 문서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촌락민의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양과동 동계향약(洞契鄕約)은 16세기부터 마을에서 실행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해이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1604년(선조 37)에 다시 실행된 후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희귀한 사례이다.
특히 광주지역은 우리 나라에서 현전 문헌상 향약을 제일 먼저 시행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과동 향약과 관련된 문서는 총 21종에 39건으로 양과동 향약문서와 향약을 시행하는 장소인 동과동정(良苽洞亭)에 관련한 문서, 그리고 이 향약을 시행하면서 세부적으로 작성된 문서로 분류할 수 있다.
문서의 내용은 양과동 향약, 양과동적립의서(良苽洞籍立議序), 양과동완의(良苽洞完議), 수조안(收租案), 동답기(洞畓記), 동중좌목(洞中座目), 시도기(時到記), 동계하기책(洞契下記冊), 수입지출부(收入支出簿), 회문(回文), 양과동정운(良瓜洞亭韻), 양과동정중수기(良苽洞亭重修記), 동직주택 중수출의기(洞直住宅 重修出議記), 동역(洞役)과 관련된 소지(所志), 경오인일운(庚午人日韻), 양과동정아회(良瓜洞亭雅會), 고죽천서선적문(高竹泉書善籍文), 문과안(文科案), 사마안(司馬案), 사환록(仕宦錄), 양과동수안(良苽洞壽案) 등이 보존되고 있다.
대개 동약(洞約)이나 동계(洞契)들은 그 마을이나 조직의 오랜 전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양과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마을의 유서를 통일신라 이래의 고현지(古縣地)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양과동적입의서문’에는 조선초기인 홍치년간(弘治年間 : 1488~1505)에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받은 동약이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동약이 중수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이었다.
중수에 간여한 유사경(柳思敬)은 동약이 100여 년을 잘 운영되다가 중간에 약간 해이해졌고, 특히 임진왜란을 지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어 중수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출처 : 남구청>
문화재 등록정보
| 문화재 지정현황 | 문화재자료 제19호 |
|---|---|
| 문화재 제작연대 | 조선시대 |
이용정보
| 휴일 | 없음 |
|---|---|
| 버스정류장 |
이장1동 :
대촌70
,
대촌170
수춘 :
대촌70
,
대촌17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