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병조형유허비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비아안길 19
- 062-960-8253
- 광산구청
기본정보
유허비란 옛 선현의 자취를 기념하고자 세우는 비이다.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의 지붕과 몸체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높이 95cm, 너비 120cm, 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로 음각문(陰刻文)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때의 문신으로 자는 군헌(君獻), 호는 충정(忠貞)이며 본관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8년) 명경관에 급제하여 사국에 재임할 때 허목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에 귀양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通信上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 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현재 하남의 안청동에는 풍양 조씨는 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선생의 후손은 없고 경기도에 친, 인척이 있다고 하지만 유허비는 방치되어 왔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 금석학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문화재 정보]
- 지정종목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 지정연도 : 1990년 11월 15일
- 소유자: 국유
- 수량: 1기
- 시대: 1873년(조선 고종 10년)
<출처: 한국관광공사>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의 지붕과 몸체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높이 95cm, 너비 120cm, 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로 음각문(陰刻文)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때의 문신으로 자는 군헌(君獻), 호는 충정(忠貞)이며 본관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8년) 명경관에 급제하여 사국에 재임할 때 허목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에 귀양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通信上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 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현재 하남의 안청동에는 풍양 조씨는 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선생의 후손은 없고 경기도에 친, 인척이 있다고 하지만 유허비는 방치되어 왔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 금석학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문화재 정보]
- 지정종목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 지정연도 : 1990년 11월 15일
- 소유자: 국유
- 수량: 1기
- 시대: 1873년(조선 고종 10년)
<출처: 한국관광공사>
문화재 등록정보
| 문화재 지정현황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
|---|---|
| 문화재 제작연대 | 1873년(조선 고종 10년) |
이용정보
| 이용시간 | 상시 가능 |
|---|---|
| 휴일 | 연중무휴 |
| 주차시설 | 없음 |
| 버스정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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