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씨 삼강문
기본정보
양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자리 잡고 있다. 송정동에서 영광통을 지나 호남대학교를 막 넘어서면 송산교 유원지로 가는 샛길이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다시 동명고를 지나 야트막한 산자락을 감고 돌면 박뫼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너른 들판을 가슴으로 감싸 안은 채 몇 호의 민가가 사이 좋은 얼굴로 늘어서 있는 곳이다. 마을 왼편 귀퉁이에 이르면, 넉넉한 표정으로 들판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양씨삼강문이 수줍은 처녀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1985년 2월 25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양씨삼강문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 일가 7인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13년에 건립한 정려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충신으로 모셔진 양산숙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 장군과 함께 순절한 무인이다. 효자로 모셔진 양산룡과 양산수는 양산숙의 형제로, 정유재란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인물들이다. 절부로 모셔진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그의 부인인 광산 이씨 또한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광운에게 출가한 누이 제주 양씨는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였다.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렸던 사람들을 기리는 이곳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출처 : 광주관광이야기>
1985년 2월 25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양씨삼강문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 일가 7인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13년에 건립한 정려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충신으로 모셔진 양산숙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 장군과 함께 순절한 무인이다. 효자로 모셔진 양산룡과 양산수는 양산숙의 형제로, 정유재란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인물들이다. 절부로 모셔진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그의 부인인 광산 이씨 또한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광운에게 출가한 누이 제주 양씨는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였다.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렸던 사람들을 기리는 이곳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출처 : 광주관광이야기>
음성안내
Update Required
To play the media you will need to either update your browser to a recent version or update your Flash plugin.
음성대본
문화재 등록정보
| 문화재 지정현황 | 기념물 제11호 |
|---|---|
| 문화재 제작연대 | 1745년(조선 영조 21) |
이용정보
| 이용시간 | 00:00 ~ 24:00 |
|---|---|
| 휴일 | 없음 |
| 이용요금 | 무료 |
| 버스정류장 |
박뫼 :
임곡290
박호동 :
임곡290
박호1리 :
임곡29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