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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맛나(味)

광주주먹밥 (나눔과 연대의 대표 음식)

만들기 쉽고 먹기 편한 주먹밥은 광주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먹밥은 광주가 계엄군으로 고립당한 후 중요한 음식이였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매년 5.18민주화운동 관한 행사에서는 주먹밥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5.18 그날의 기억 웹툰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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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그날의 기억 웹툰 이미지 4

5.18 그날의 기억

1980년 5월

정주 : 엄마! 오늘 장사 잘됐어?

엄마 : 요즘 민주화다 뭐다해서 당최 사람이 안오는 것 같아.

정주 : 근데 오빠는?

엄마 : 친구들 데려와서 나라를 위해 투쟁 어쩌고 하는데 도통 그게 뭔지...

다음날.

정주 : 오빠! 무슨 일이야!

오빠 : 헉 헉. 계엄군이 광주로 왔다. 지금 금남로에서 군인들이 시위대든 지나가던 행인이든 무자비하게 때리고 난리가 났어. 빨리 어머니한테 가서 장사 그만하고 집에 가만히 계시라고 전해라! 내가 찾아가면 어머니가 걱정하실 테니 네가 가서 잘 말씀드리고 와!

엄마 : 나도 손님들한테 들었다. 군인들이 시민군들을 막 때리고 난리 나브렀다고. 근데 느그 오빠는 어디 있다냐?

정주 : 오빠는 괜찮을거니까 엄마라도 집에 붙어 있어 제발.

다음날

엄마(편지) : 정주야. 엄마도 내 새끼들 같은 애들 도우러 나가야겠다. 시장 아주머니들 연락받고 나가는거고 그냥 애들 밥이나 만들어 주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너희 오빠가 찾아오면 자식을 부모가 어떻게 이기겠느냐마는 몸조심하고 다치는게 가장 큰 불효니 불효를 저지를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전해 주거라.

정주 :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엄마를 보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날부터 나도 함께 주먹밥을 만들었다. 시민군이라고 해봤자 군용트럭을 타고 다니는 오빠 또래의 앳된 얼굴들이었고 오빠를 생각하며 주먹밥을 나눠주었다. 80년 5월, 오빠는 크게 머리를 다쳤고 지능이 다섯 살 정도로 떨어져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오빠는 주먹밥을 좋아했다. 오빠는 야구공처럼 둘글둘글한 주먹밥이 귀여워 보였을까. 아니면 80년 5월의 광주를 지킨 수많은 광주 시민 중 누군가의 손을 통해 그녀가 만든 주먹밥을 전달받았을까. 그리고 악몽 같은 일들은 다 잊어버린 채 그날의 따뜻한 주먹밥의 맛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ㄷ다. 어머니의 손은 80년 5월의 주먹밥을 만들던 고운 손이 온데간데없이 주름살이 가득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