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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기독교]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
좋아요 31
[사찰/기독교]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
1925년 건립 이 건물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유진벨(Rev. Eugene Bell, 1868~1925, 한국어 이름: 배유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1925년 건립 이 건물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유진벨(Rev. Eugene Bell, 1868~1925, 한국어 이름: 배유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예배당으로 이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중앙을 기점으로 대칭을 이루고 곳곳에 원형 창과 첨두아치 형상의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많고 건축 기법이 우수한 건축물이다. <출처 : 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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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기독교]
광주 북동천주교회
좋아요 53
[사찰/기독교]
광주 북동천주교회
광주 최초의 천주교회로서 의미가 깊은 북동천주교회는 1937년 전라남도가 광주교구로 승격되면서 주임신부로 부임한 구신부 (Rev. Thomas Quinlan)가 중국인 교우 가요셉... 광주 최초의 천주교회로서 의미가 깊은 북동천주교회는 1937년 전라남도가 광주교구로 승격되면서 주임신부로 부임한 구신부 (Rev. Thomas Quinlan)가 중국인 교우 가요셉에게 의뢰하여 지은 박공지붕의 조적식 건물이다. 평면은 좌우 대칭의 세장한 장방형으로 전면에 종탑과 후면에 장방형의 후진(Apse)을 배치한 보편적인 성당건축과 유사한 평면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87년에 좌측의 제단과 제의실 사이를 일부 헐고 증축을 통해 회중석을 확장함으로써 현재 ‘ㄱ’자형 평면형태를 갖게 되었다. 내부공간을 보면 출입구와 회중석 사이의 공간인 전실(Narthex)에 두 개의 석조원형기둥을 두어 회중석과 경계로 이용하고 있으며, 회중석은 세 부분으로 구획된 전면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네이브(Nave)와 아일(Asile)의 경계가 없고 제단부와 감실은 목재로 마감하여 영역을 구분하였다. 좌측 면에는 제의실과 고해실을 두었다. 이층은 나르텍스(Narthex) 상부에 노대(Balcony)로 구성하여 성가대 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벽면과 갈색의 목재로 구획된 둥근 천장은 별다른 장식이 없이 흰색 플라스터로 마감하였다. 영식 쌓기로 마감한 벽면은 약 3m 단위로 버팀벽(buttress)을 세워 구획하였고, 모든 문과 창의 인방 및 원형 창에는 화강석으로 원형, 반원형의 아치를 둘렀으며 주 출입구는 4단의 물림아치(Recessed arch), 처마돌림에는 몰딩수법을 사용하였다. <출처 : 광주광역시>
좋아요 53
[사찰/기독교]
약사암
좋아요 26
[사찰/기독교]
약사암
자연과 따로서지 않고 일점을 더하듯 세워져 어느새 스스로 자연이 된 암자 약사암. 암자는 봉우리를 품고, 봉우리는 암자를 오랜 지기로 마주보는 모습에 보이는 이의 가슴이 저절로 따... 자연과 따로서지 않고 일점을 더하듯 세워져 어느새 스스로 자연이 된 암자 약사암. 암자는 봉우리를 품고, 봉우리는 암자를 오랜 지기로 마주보는 모습에 보이는 이의 가슴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약사암은 이렇듯 서로 다독이며 어울려 살아가라는 부처님 말씀을 말 없이 전해준다. 약사암은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번으로는 도심 속에 있는 듯 보이지만 무등산 속에 숨어있는 별같이 작고 아름다운 암자이다. 증심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증심사 일주문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증심사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약사암이 나온다. 600미터쯤 올라가노라면 일주문이 날아갈 듯 서 있고, 약사계곡 왼쪽 분지에 그림 같은 새인봉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암자가 보인다. 바로 약사암이다. 신라 말 철감국사 도윤이 증심사를 창건하기 위해 먼저 지은 절로 원래는 인왕사라는 암자였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의 옷깃이 이 암자를 스쳐갔다. 법당에는 신라 하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질병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약사불은 중생들에겐 가장 필요한 부처의 모습이다. 8각 연꽃무늬 대좌에 앉으신, 유난히 넓은 무릎의 이 약사불은 천 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중생의 기원을 들었을까? 두툼한 입술, 보일 듯 말듯한 미소, 중생을 향한 지극한 연민과 무명이 못내 안타까워 애타시는 마음의 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비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 혹독한 추위와 폭설이라도 봄이면 새로운 새싹이 돋는 법인데 왜 우리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겨울의 찬바람 속에 서 있을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지쳐있는 우리에게 약사불의 미소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얼굴엔 환한 미소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약사불의 신비로운 치유일지도 모른다. 그 미소의 심연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의 얼굴엔 저절로 약사불의 미소까지 새겨지게 된다. 약사암 경내에는 1980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대웅전, 정면 6칸, 좌측면 5칸으로 ‘ㄱ’자 모양의 민도리집인 요사채가 있고 대웅전 뒤편으론 팔작지붕의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운림당이 있다. 달빛이 교교한 달밤은 약사암 풍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풍경에 마음이 동한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쉬운 일이니만큼 깊은데서 오는 깨달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마당의 새인봉은 어제처럼 들어와 있고 그 위로 잘 닦인 놋주발 같은 보름달이 떠있다. 잠시만 바라보고 있어도 세상사 한 줌의 티끌처럼 부질없어 질 것이다. 아무리 미워한 마음도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녹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부처님의 법문이라도 듣고 있노라면 성과 속이 둘이 아니고 사람과 하늘이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약사암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눈에 보이는 약만이 치유 하는 약은 아닐 것이다. 번뇌 많은 정신을 가다듬어 갈 길을 되잡아주는 일이 진정한 약사암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번다해 질 때 증심사로 가는 길을 잡아 조용히 약사암에 오르면, 수많은 풍파를 견디고 천년 세월의 흔적을 안으로 삭혀 안은 약사암이 우리의 아픔쯤이야 넉넉한 품 안에 넣어 다 녹여 줄지 모른다. <출처 : 광주관광이야기>
좋아요 26
[사찰/기독교]
오웬기념각
좋아요 34
[사찰/기독교]
오웬기념각
오웬기념각 서쪽 정면에 출입문에 하나 있고, 북쪽으로 똑같은 모양의 출입문이 하나 더 있다. 동일한 모양의 출입문이 왜 두 개일까? 건축할 당시(1911년 즈음)우리나라는 여전히 ... 오웬기념각 서쪽 정면에 출입문에 하나 있고, 북쪽으로 똑같은 모양의 출입문이 하나 더 있다. 동일한 모양의 출입문이 왜 두 개일까? 건축할 당시(1911년 즈음)우리나라는 여전히 남녀유별이라는 사회적 관습이 엄격히 존재하였다. 이때문에 한 공간에 남녀가 같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설계당시 남녀가 같이 모여 공연을 관람하기 위한 묘안으로 동일한 출입문을 양쪽에 배치하여 남녀가 별도로 출입하게 하였고, 오웬기념각 내부는 무대를 중심으로 가림막을 쳐서 남녀가 서로 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비록 서양식 건출물이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풍습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출입문 윗편에 오웬기념각이라는 영문표기가 있다. 오웬(Owen, 한국명 오기원)은 양림동을 찾은 다른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의대를 졸업하여 의술을 익혔다. 1909년 4월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순천, 고흥, 보성 등 15개 지방을 맡아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오웬의 선교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Swinehart(한국명:서로득)선교사가 기념관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1911~1912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출입문은 아치 형태로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조형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그 외에 1층과 2층을 구분하는 허리돌림띠, 실내는 무대를 향해 경사지게 설계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오웬기념각 뒤편에 월계수 나무가 한 그루 잘 자라고 있다. 실생활에서 월계수 잎은 돼지고기 냄새를 잡기 위해 요리에 사용하지만, 상징적이고 신화적 의미도 크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아폴론이 거대한 용을 죽이고 월계수 잎으로 용의 피를 닦아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월계수는 속죄하고 정화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전투에서 승리한 영웅이 개선 행진을 할 때 흘린 피를 정화하라는 의미에서 월계수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승리에 대한 상징으로 확장되면서 운동경기에서 승리할 때도 월계수를 사용하여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에 월계수 잎으로 된 관을 선사하기도 한다. 오웬기념각을 벗어나 양림교회 입구에서 오웬기념각을 바라본다. 회갈색통의 오웬기념각과 빨간색톤의 양림교회가 컬러측면에서 잘 대비된다. 또한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두 건물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고 두 건물 사이에 적절히 조경이 되어있어 좋은 구도가 된다. 또 다른 구도로는 기독간호전문대학 쪽에서 오웬기념각을 바라보는 구도이다. 잘 관리된 잔디밭과 여유로운 벤치, 그리고 고풍스러운 오웬기념각의 모습을 한 컷에 담으면 이국적 풍경이 잘 살아난다. <출처 : 광주광역시>
좋아요 34
[사찰/기독교]
우일선 선교사사택
좋아요 32
[사찰/기독교]
우일선 선교사사택
이곳을 봐야 양림동을 본 것! 미국인 선교사 윌슨(Wilson, 한국명 우일선)이 거주했던 사택으로 양림산 기슭에 세워진 2층 회색 벽돌건물이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 함께... 이곳을 봐야 양림동을 본 것! 미국인 선교사 윌슨(Wilson, 한국명 우일선)이 거주했던 사택으로 양림산 기슭에 세워진 2층 회색 벽돌건물이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 함께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양림동을 대표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정원에는 호랑가시나무와 흑호도나무, 은단풍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밑에는 이색숙소인 호랑가시 게스트하우스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위쪽으로는 선교사 묘역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정면으로는 무등산 풍경이 원경으로 잘 보여 마음을 정돈시켜 준다. 우일선 의사는 제중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1905년 유진벨 선교사의 임시사택에 설립된 제중원은 현재의 광주기독병원으로 100년 넘은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우일선 선교사는 당시 천벌로 여겨지던 한센병 환자들을 친가족처럼 보살피며 자활의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다.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오자 여수 율촌면에 애양원을 개척하여 평생을 의료사역에 바쳤다. 사택의 1층은 거실과 부엌 등의 공용공간으로 2층은 침실 등 사생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규모가 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서양인은 아기를 잡아 약을 만든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있어 배타적인 분위기가 강해 서양인들의 거주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사택 건축 자체를 선교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건설 인부를 한국인으로 고용하되 후한 임금을 주었고, 완공 후에는 서양문물에 호기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방문을 유도하는 등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앞에는 100년 정도 된 흑호도나무와 은단풍나무, 그리고 이 지역에서 자생하던 호랑가시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다. 가끔씩 정원에서 음악회가 열리곤 하는데 야경과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앞에 100m 정도의 돌담길이 있는데 월례행사로 '열정의 백미'라는 벼룩시장이 열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출처 : 광주광역시>
좋아요 32
[사찰/기독교]
증심사
좋아요 220
[사찰/기독교]
증심사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헌인왕 4년(860) 철감선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선종 때(1094) 혜소국사가 중창하였다. 조...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헌인왕 4년(860) 철감선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선종 때(1094) 혜소국사가 중창하였다. 조선 세종 때(1443) 김방이 중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광해군 때 또다시 증수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불교에 대항하는 한국의 임제종 운동을 펼친 본거지가 바로 증심사였다. 6.25 전란으로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졌으나 1970년 이후 활발한 복원작업을 펼처 지장전-비로전적묵당 등을 새로 건립하였다. 다행히 참화를 피한 오백전이 유일한 조선조의 건물인 셈이다. 증심사는 한국동란 때 원형을 잃어버렸지만 광주지역의 대표적 사찰이다. 무등산이라는 빼어난 산세의 중심에 있을뿐더러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내에는 오백전·3층석탑·5층석탑·7층석탑·오백나한 및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31)·석조보살입상 등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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